by 베이비핑크
지금은 없어진 직업 중에 하나지만 과거에는 정말 몇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가 문선공이였습니다. 네이버 사전 검색을 시전 해 보면 문선공의 정의가 나옵니다.
문선공 : 인쇄소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 뽑는 사람
지금이야 컴퓨터로 거의 모든 활자 매체가 완성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일이 사람이 원고를 보고 글자 하나하나의 활자를 찾아서 조합을 이루어 만들어냈으니까요.
신문이라는 매체에서 문선공의 위치는 아주 높았습니다. 일단 아무나 할 수 없었는데, 수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야 진정한 신문사의 문선공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거의 매일 발행되는 신문에 활자를 찾아 단어를 만들고 단어를 조합해 기사 하나를 완성하며, 그 기사들을 모아 드디어 신문이 탄생하는 것인데, 그 시간이 굉장히 빨라야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베테랑급 문선공에게는 한, 두명의 조수가 있을 뿐 입니다. 이들의 손 빠르기는 프로게이머 APM 500때를 육박할 정도로 굉장합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손이 안 보일 정도라고 합니다. 기자가 써 온 원고를 좌측에 두고 우측 어깨에 판을 대고 오른손으로 그 판을 받친 후 눈은 원고에 고정된 채, 왼손은 활자를 찾아 내는 것입니다. 찾은 활자는 우측 어깨에 받쳐진 판에 던져집니다. (조수는 그 판에 던져진 활자를 조립 합니다)
상상 해 보면, 문선공의 눈은 원고에 고정되고 오른손은 마치 바이올린을 켜듯 판을 어깨에 대고 왼손은 활자를 원고에 나온 글자대로 뽑아 냅니다. 프로게이머의 키보드 치는 속도와 버금가는 속도로 어깨에 올려진 판에는 활자가 우루루 쏟아집니다.
10년 정도의 경력으로는 이 속도를 내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베테랑급 문선공은 우리나라에 몇 안됐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조간, 석간으로 신문이 나왔기에 이들의 업무량은 빡빡했고, 그 만큼 대우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시대의 흐름을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텔레타이프가 등장했고 서서히 문선공의 입지는 좁아졌고,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대단한 점은 단순히 손이 빠르다는 데만 있는 건 아닙니다. 흔히 기자들은 악필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당시 모든 기사는 손으로 썼고, 마감에 쫓기는 일이 허다해 문선공이 보는 원고라는 것은 실로 ‘이것이 과연 글자인가?’ 라는 말을 할 정도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단순히 기자의 필체도 악필이지만, 기자가 1차 완성한 기사를 선배 기자(데스크)가 다시 수정, 보완을 하는데, 이 과정에 악필의 원고는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기사 하나를 완성하려면 보통 원고지 30-50장은 기본입니다. 경력이 적은 기자일수록 기사 원고 수정은 복잡합니다. 16절지 만한 원고지가 금세 3, 4장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붙습니다. 사이즈가 작다 보니 수정할 부분을 적을 공간이 부족하기에 좌우, 상하 방향에 원고지를 또 붙여 거기에 적어 넣는 것입니다.
데스크를 보는 기자 또한 악필 중의 악필이며, 마감에 쫓기기 시작하면 글은 어느새 실을 풀어놓은 듯한 형상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원고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선공은 이런 원고의 모든 글을 정확하게 알아냅니다. 글자 하나 안 틀리고 활자를 집어내고, 조합을 이룹니다. 그리고 조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며칠 전 아버지가 문선공 출신이고, 당신은 문선공 조수 역할을 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벌써 60이 가까워진 노청년이었습니다. 이 노청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땐 기사 하나 쓰려면 원고지 수십장은 찢어졌을걸? 티비보면 소설가가 글 쓰다 막 신경질부리며 원고지를 찢어서 옆에 쌓아 두잖어? 그게 소설가만 그런게 아니야. 기자들도 그랬어. 단어를 만들고, 조사를 찾아 그 단어를 서로 연결하며 문장을 만들어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어. 그들이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며 처절하게 원고지를 찢은 건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걸 요새 사람들은 프라이드라고 하나? 아마도 집에 가서 원고를 채우려면 담배 2, 3갑은 필수였지. 찢어진 원고지 1장에 담배 한 가치는 물물교환 상대였어. 그들의 이빨을 보면 누렇지 못해 금니를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지. 난 그래서 그들의 원고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것이 끝없는 처절함의 산물인지 알거든. 아마도 우리 아버지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겠지?”
기사가 넘쳐 그 중에 골라 쓰는 것이 요즘입니다. 예전에 비해 기사는 쉽게 지우고, 쉽게 다시 쓸 수 있고, 쉽게 고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수북이 쌓여 있던 찢어진 원고지는 퇴고의 산물이었지만, 지금은 ‘Delete’ 키 하나에 퇴고의 산물은 존재조차 못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문선공이라는 직업을 통해 그 시대의 처절한 무언가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네요. 쉽게 쓰여진다는 느낌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게 요즘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직업 중에 하나지만 과거에는 정말 몇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가 문선공이였습니다. 네이버 사전 검색을 시전 해 보면 문선공의 정의가 나옵니다.
문선공 : 인쇄소에서 원고대로 활자를 골라 뽑는 사람
지금이야 컴퓨터로 거의 모든 활자 매체가 완성되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일일이 사람이 원고를 보고 글자 하나하나의 활자를 찾아서 조합을 이루어 만들어냈으니까요.
신문이라는 매체에서 문선공의 위치는 아주 높았습니다. 일단 아무나 할 수 없었는데, 수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야 진정한 신문사의 문선공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거의 매일 발행되는 신문에 활자를 찾아 단어를 만들고 단어를 조합해 기사 하나를 완성하며, 그 기사들을 모아 드디어 신문이 탄생하는 것인데, 그 시간이 굉장히 빨라야 했습니다.
신문사에는 베테랑급 문선공에게는 한, 두명의 조수가 있을 뿐 입니다. 이들의 손 빠르기는 프로게이머 APM 500때를 육박할 정도로 굉장합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손이 안 보일 정도라고 합니다. 기자가 써 온 원고를 좌측에 두고 우측 어깨에 판을 대고 오른손으로 그 판을 받친 후 눈은 원고에 고정된 채, 왼손은 활자를 찾아 내는 것입니다. 찾은 활자는 우측 어깨에 받쳐진 판에 던져집니다. (조수는 그 판에 던져진 활자를 조립 합니다)
상상 해 보면, 문선공의 눈은 원고에 고정되고 오른손은 마치 바이올린을 켜듯 판을 어깨에 대고 왼손은 활자를 원고에 나온 글자대로 뽑아 냅니다. 프로게이머의 키보드 치는 속도와 버금가는 속도로 어깨에 올려진 판에는 활자가 우루루 쏟아집니다.
10년 정도의 경력으로는 이 속도를 내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베테랑급 문선공은 우리나라에 몇 안됐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조간, 석간으로 신문이 나왔기에 이들의 업무량은 빡빡했고, 그 만큼 대우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시대의 흐름을 극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텔레타이프가 등장했고 서서히 문선공의 입지는 좁아졌고, 결국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대단한 점은 단순히 손이 빠르다는 데만 있는 건 아닙니다. 흔히 기자들은 악필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 당시 모든 기사는 손으로 썼고, 마감에 쫓기는 일이 허다해 문선공이 보는 원고라는 것은 실로 ‘이것이 과연 글자인가?’ 라는 말을 할 정도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단순히 기자의 필체도 악필이지만, 기자가 1차 완성한 기사를 선배 기자(데스크)가 다시 수정, 보완을 하는데, 이 과정에 악필의 원고는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됩니다.
200자 원고지를 기준으로 기사 하나를 완성하려면 보통 원고지 30-50장은 기본입니다. 경력이 적은 기자일수록 기사 원고 수정은 복잡합니다. 16절지 만한 원고지가 금세 3, 4장이 동서남북 방향으로 붙습니다. 사이즈가 작다 보니 수정할 부분을 적을 공간이 부족하기에 좌우, 상하 방향에 원고지를 또 붙여 거기에 적어 넣는 것입니다.
데스크를 보는 기자 또한 악필 중의 악필이며, 마감에 쫓기기 시작하면 글은 어느새 실을 풀어놓은 듯한 형상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원고가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문선공은 이런 원고의 모든 글을 정확하게 알아냅니다. 글자 하나 안 틀리고 활자를 집어내고, 조합을 이룹니다. 그리고 조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며칠 전 아버지가 문선공 출신이고, 당신은 문선공 조수 역할을 했던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벌써 60이 가까워진 노청년이었습니다. 이 노청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땐 기사 하나 쓰려면 원고지 수십장은 찢어졌을걸? 티비보면 소설가가 글 쓰다 막 신경질부리며 원고지를 찢어서 옆에 쌓아 두잖어? 그게 소설가만 그런게 아니야. 기자들도 그랬어. 단어를 만들고, 조사를 찾아 그 단어를 서로 연결하며 문장을 만들어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어. 그들이 그렇게 스트레스 받아가며 처절하게 원고지를 찢은 건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걸 요새 사람들은 프라이드라고 하나? 아마도 집에 가서 원고를 채우려면 담배 2, 3갑은 필수였지. 찢어진 원고지 1장에 담배 한 가치는 물물교환 상대였어. 그들의 이빨을 보면 누렇지 못해 금니를 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지. 난 그래서 그들의 원고가 얼마나 소중하고, 그것이 끝없는 처절함의 산물인지 알거든. 아마도 우리 아버지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겠지?”
기사가 넘쳐 그 중에 골라 쓰는 것이 요즘입니다. 예전에 비해 기사는 쉽게 지우고, 쉽게 다시 쓸 수 있고, 쉽게 고칠 수 있었습니다. 과거 수북이 쌓여 있던 찢어진 원고지는 퇴고의 산물이었지만, 지금은 ‘Delete’ 키 하나에 퇴고의 산물은 존재조차 못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문선공이라는 직업을 통해 그 시대의 처절한 무언가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렇지가 못하네요. 쉽게 쓰여진다는 느낌을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게 요즘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