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시인 손영자, 발행인의 어머니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척박한 현대도시의 생활환경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새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한 가닥 즐거움이 된다. 도시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새는 바로 비둘기들이다. 마치 주위환경에 잘 동화되기라도 한듯 깃털의 색깔조차 회색이기도 한 비둘기들은 더러는 공원에서, 또 더러는 건물의 옥상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쪼고, 스스로 먹이를 찾아 먹으며 알을 낳고 새끼를 길러 생존하고 번식해간다.
그러나 때로는 즐거움이 되기도 하는 이 새들이 우리들 생활에 불편을 주는 점도 만만치 않다.
공원이나 거리뿐 아니라 주택가나 아파트촌에서도 비둘기들은 많이 사는데 잘 닦아놓은 승용차를 분비물로 더럽히는가 하면 어떤 새들은 환풍기통을 집으로 삼아 드나들며 환풍기를 사용하기 곤란하게 하기도 한다.
우리 집도 그 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베란다에 샤시문이 없다보니 비둘기들이 자주 날아와서 화분에 뿌린 씨앗을 쪼아먹고 흙을 파헤친다. 햇볕이 밝게 드는 날 장독이라도 열어놓을라치면 고추장단지 속에 반갑지도 않은 발자국을 찍어놓기도 한다.
이제 우리 집은 어쩔 수 없이 비둘기와 함께 산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지난 겨울 어느 날 비둘기가 날아와서 베란다를 이리저리 정찰하더니 드디어 터를 잡기 시작하였다.
부근에서는 쉽사리 구할 수도 없는 작은 나뭇가지들을 물어오는가 하면 과자봉지를 가로로 찢으면 생기는 가늘고 기다란 비닐막대기 같은 것도 물어다가 둥지를 트는 것이었다. 부족한 건물자재 대용인 것 같았다.
장독항아리 사이의 빈 곳에다 그렇게 보금자리를 마련한 뒤 꼭 메추리알 만 한 크기의 새하얀 알 두 개를 낳고는 암수가 번갈아가며 품기 시작하였다.
베란다에는 바람막이 샤시문이 없고 바닥은 차가운 사기타일이라서 알이 보온되기 어려울까봐 둥지 밑에 수건을 한 장 깔아주었다.
체면도 없이 여기저기 갈겨대는 분비물로 더럽혀지는 베란다를 군말 없이 치우면서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 날짐승의 애로를 내가 이해안하면 누가 하겠느냐면서 비둘기는 지저분한 새이니 아예 붙이지를 말라는 이웃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박애정신으로 일관하였다.
드디어 알이 깨지는 아픔이 오고 털도 없고 눈도 뜨지 못하는 어린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
어미는 어린 새끼가 추울세라 열심히 품어주었다.
얼마 뒤 그 중 약한 한 마리가 죽었다.
아이들은 제일 보드라운 화장지에 그것을 소중히 싸서 아파트 뒷켠 화단에 묻고 ‘비둘기 무덤’이라고 팻말을 꽂고 하루에 열 번씩 조문을 하였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무덤이 젖는다고 걱정을 태산 같이 하면서 안달이었다.
남은 새끼는 가무스럼하게 깃털도 돋고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도 잘 받아먹었다.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 주고받는 일이 어째 잘 되지 않는 건지 아니면 부리 속에서 부드럽게 만들어 먹이느라고 그러는지 어미와 새끼가 서로 부리를 물고 있는 시간이 꽤 길 때도 있어서 마치 오랜 입맞춤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점점 자란 새끼는 어느 날 날아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내가 그들의 사정을 봐주는 기간도 끝났다고 생각하고 두어 번 갈아준 더러워진 수건을 고무장갑 낀 손으로 들어내고 코를 막으며 베란다 청소를 대대적으로 실시하였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 일이람!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이 구돌이 구순이 부부가 또 둥지를 틀려고 하는 게 아닌가!
번식력도 왕성하시지 새끼가 겨우 다 자란지 얼마나 됐다고...
구돌이와 구순이는 울음소리를 따라 아이들이 지어준 그 비둘기 한 쌍의 이름이다.
새로 물어다놓은 나뭇가지와 스티로폼 조각들을 싹 쓸어버릴까.
그렇지만 마음이 약해서 차마 그렇게 못하고 한 번 더 봐주기로 하였다. 지저분하고 귀찮기는 하지만 여기서 내쫒기면 또 어디를 헤매며 알 낳을 장소를 찾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그럴 수 가 없었다.
이번에는 장독대 사이의 구석진 곳이 아니라 눈에 잘 띄는 베란다 가운데 쯤 이었다.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어쩌면 약간 음산하기조차 한 “꾸윽 꾸꾸윽..”하는 울음소리를 수시로 들으면서 아이들은 좁쌀을 베란다에 뿌려주었다. 알을 품는 비둘기는 먹이를 구하러 가지 않고 계속 둥지 속에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베란다 청소를 해야겠다 싶을 때도 가까이 가기만 하면 깃털을 곤두세우고 부리로 쪼으려 하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았다. 혹시 알이나 자신을 해치기라도 할까봐 그러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베란다가 하도 더러워서 그만 짜증이 났다. 상쾌한 아침의 기분을 잡치고 말았다.
“요것들아, 너희들이 아니라도 바빠 죽겠는데 왜 너희들까지 보태서 속을 썩이니? 오늘 저녁에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청소한다. 알았어?‘
이렇게 엄포를 놓고는 바삐 출근하였다.
저녁때 집에 돌아와 보니 어미 새는 보이지 않고 알만 두 개가 동그마니 놓여 있었다.
어디 잠깐 외출이라도 하였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새는 밤새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알이 식으면 안 되는데 웬일일까 하고 내가 걱정을 하자 딸아이가
“오빠가요, 비둘기에다 물총을 쐈어요. 그래서 그만 도망갔어요”라고 하지 않는가.
화가 나서 아들녀석에게 왜 그런 못된 짓을 했느냐고 다그친 후에 어제 아침 내가 한 말이 원인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엄마가 비둘기 때문에 속상해 하는 걸 보고는 혼내주려 했다는 거였다.
비둘기는 계속 오지 않았고 알들은 찬 공기를 쏘이며 거무스럼하게 변해갔다.
알을 주워서 살펴보았더니 약간 금이 간 것 같았다. 물총을 맞을 때 놀라서 발로 밟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가슴 아파해 봐도 어쩔 수 없었다.
아들녀석에게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이르고 베란다 청소를 깨끗이 하고 오랫동안 열어놓지 못했던 장독도 열어놓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또 그 부부가 베란다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은 이들이 구돌이 구순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이번에는 희한하게도 화분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화분대에는 납작하고 네모난 화분이 하나 있었는데 그 화분의 식물이 하도 번식력이 강해서 내가 많이 잘라내 버렸으므로 잎사귀가 조금만 남아 있고 가운데는 흙이 오목하게 파여 있었는데 이제 그 속에 떠억하니 들어앉아서 알 낳을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화분에는 알이 굴러 떨어지지 않을 테두리도 있고 또 바닥은 부드러운 흙이었으므로 나뭇가지를 물고 올 필요도 없었는지 그런 작업도 없었다.
볼만했다.
아니 화분대 풍경이 진풍경이었다.
몇 줄씩 놓여 있는 화분의 가운데에 들어앉아서 살아 있는 꽃과 새의 화조도를 연출하고 있으니 그림의 경치가 그만이었다.
꽃에 물은 어떻게 준담...
궁리 끝에 비둘기집만 이사하기로 하고 그 화분은 따로 들어내어 장독대 옆으로 옮겨놓고 날아가 앉기를 기다리는데 이 멍청이들이 옮겨가지를 앉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화분을 원 위치에 도로 갖다놓고는 다른 화분들을 모두 베란다 바닥에 내려놓아야만 했다.
화분들은 모두 이사 가고 비둘기만 빈 고층아파트를 차지하고 앉아서 또 다시 알을 두 개 낳았다.
이번에는 아이가 물총을 쏘는 일도 없어서 발그레 분홍빛으로 잘 품어진 알에서 새끼가 한 마리 먼저 태어났다.
어느 날 저녁 마루에 놓인 식탁에서 저녁을 먹으며 베란다의 비둘기를 보고 있으려니 어미 배 쪽의 가장 보드라운 깃털을 밀어내고 무언가가 잠시 꼼지락거리더니 깃털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혹시 새끼가 아닌가 싶어서 다시 지켜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 막 깨어난 새끼임에 틀림없었다.
“얘들아, 새끼가 태어났다. 지금 막 움직이고 있어!”
나는 기뻐서 소리쳤고 방에서 아이들이 뛰어나왔다.
얼마나 신비한 탄생인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새 생명인가.
아들녀석은 오늘 재수는 왕재수라고 한다. 비둘기 새끼가 태어났으니 아주 재수가 좋다는 거였다.
비둘기 새끼가 재수의 대상이 된다는 아이의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새 생명의 출현을 지켜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감동스럽지 않을 수 없다.
온갖 불편함과 속상함을 참고 견디며 비둘기와 함께 산 덕분에 아이들에게는 매일 일기꺼리가 제공되었으며 귀한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는 시간이 되었고, 나에게는 하루를 끝내고 지친 귀가시간, 늦은 식탁에서 맛보는 특별한 경외감으로 하여 내일을 살아갈 삶의 활력소를 얻는 것이다.
자연과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생활이지만 화분에 한 포기 꽃을 피우는 마음이 있기에 새들도 날아와서 둥지를 트는 게 아닐까.
아직 남아 있는 하나의 알이 마저 깨어나는 것을 기다리면서 우리 집은 앞으로도 이 비둘기 부부가 날아와서 둥지를 짓는 한 어떤 형태로든 계속 함께 살아가게 되리라는 짐작을 해본다.